시인의 오지 기행 - 고요로 들다
이윤학 시인은 "도시 사람들은 왕따가 되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다.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수록 왕따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27)"이 오지에 살고 있다며 "스스로 왕따이기를 자초한 사람들"을 찾아간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31)"라는 백석의 시를 인용하며 오지 사람이 따라준 오디술을 받는다. 염소를 잡는 날이면 염소들이 우리를 나가며 울부짖는다거나 며칠씩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이문재 시인은 전기가 들어오면 그곳은 더 이상 오지가 아니란다. "전기가 들어가고, 도로가 뚫리면 끝장난다(42)"며 히말라야를 여러 번 다녀온 친구에게 들에 들은 얘기를 전한다. 오지는 전기와 신문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단절될수록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는 유영금 시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박후기 시인은 오지를 이렇게 말한다. "물리적인 거리, 혹은 도달 시간만을 두고 말한다면 더 이상 '오지'는 없다. 달 표면에도 이미 인간의 발자국이 찍혔으며, 패스파인더(미국의 무인 화성 탐사선)는 화성의 어느 골짜기에서 추위를 견디며 길을 찾고 있다. 마음에서 잊힌 곳을 찾아간다고 했을 때, 오지라는 말은 비로소 원래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지는 깊은 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닿고자 하는 바람으로서의 심원으로도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내 발길이 닿지 않은 서울 하늘 아래 어느 좁은 골목도 오지요, 강과 계곡의 깊숙한 곳 또한 오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10)" 하지만 오지란 살 곳이 못 된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집을 짓지 않고 떠나는 첫사랑처럼, 사람들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그곳에 있지 않다. 늘 무언가를 찾아서, 누군가를 잊으려 길을 떠나지만, 차마 인연의 끈을 내려놓지 못하고 잠시 벗어 둔 옷가지를 챙기듯 주섬주섬 다시 싸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20)"
굴업도에 간 이기와 시인은 비단고둥을 보며 명상한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비단고둥은 움직임 없이 간다. 그의 움직임의 과정을 목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그가 남긴 흔적만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을 뿐이다. 그의 흔적을 확인하는 것조차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달랑게가 그의 옆을 지나갔다. 너무도 빨리 지나갔기 때문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후에 알았다. 너무 느려도 보이지 않고, 너무 빨라도 보이지 않는 이런 법法, 자연법의 이면을 투시하고 참구하는 것이 명상이라는 것인가?(114)"
김규성 시인은 "발명과 발견은 새롭다는 점에서는 어슷비슷하지만 그 근원과 결과는 영 딴판이다. 기존의 사물을 이합집산하여 새로운 용도를 덧붙이는 게 발명인 반면에 미처 눈에 띄지 못한 은닉을 찾아내 새로이 기리는 게 발견이다. 발명이 다다익선을 핑계로 한 문명의 기호학이라면 발견은 잠든 사실을 일깨운 문화의 고고학이다. 발명은 주로 손과 머리로 하지만 발견은 대개 발품을 팔아서 한다.(270)"며 오지는 발품에 의해 어렵사리 발견당하며 베일을 벗는다고 한다.
김규성 시인은 도로를 벗어나 오지를 여행하라고 한다. "산에는 길이 셋이다. 입산 자격을 상실한 담뱃불의 이기적 부주의만 아니라면 굳이 그 흉허물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될 임도가 있고, 버젓한 남의 산에 허락도 없이 인적을 짱박아 놓은 등산로가 있고, 그 무지막지한 횡포를 어렵사리 비켜서서 토박이 주인이면서도 오히려 도둑처럼 숨을 졸여 다니는 호젓한 산짐승들의 길들이 따로 있다. 산짐승들의 길은 폭이 좁은 반면 발자국이 한결 두렷하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고라니, 멧돼지, 살쾡이, 토끼들의 자취를 본숭만숭 더듬을 수 있다. 운 좋으면 누군가 방목하다가 놓쳤을 흑염소가 생파같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풍경도 만날 수 있다.(278)" 다만, "오지를 입에 올리려면 현지에서 최소한 강산이 한 번쯤 변하는 십여 해는 나고 봐야 그 맛과 속내를 따따부따할 수 있다(281)"며 감상적 어투로 감히 오지를 말하지 말라고 한다.
"오지를 여행하는 즐거움은 자연과 가까워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멀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번잡한 문명과 사회제도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오지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오지는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곳, 모르는 곳은 모두가 오지입니다. 내 마음 속에도 오지가 있고,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도 오지가 있습니다. 오지를 찾으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먼저 주위를 둘러보시기 바랍니다.(198)" 이진우 시인은 우리 주위에 오지가 되어가는 곳을 살펴보라고 당부한다.
23명의 시인들이 민통선에서 제주도까지 오지를 찾아 다니며 쓴 오지 안내서를 읽으면 오지는 어디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아 왕따가 된 오지가 도처에 있지만, 느리게 걷지 않으면 오지는 어디에도 없다.
시인의 오지 기행/박후기 외/문학세계사 20120625 336쪽 14,000원
덧. 오탈자
237쪽 식석기 시대의 간석기도 → 신석기 시대의 간석기도
이문재 시인은 전기가 들어오면 그곳은 더 이상 오지가 아니란다. "전기가 들어가고, 도로가 뚫리면 끝장난다(42)"며 히말라야를 여러 번 다녀온 친구에게 들에 들은 얘기를 전한다. 오지는 전기와 신문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단절될수록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는 유영금 시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박후기 시인은 오지를 이렇게 말한다. "물리적인 거리, 혹은 도달 시간만을 두고 말한다면 더 이상 '오지'는 없다. 달 표면에도 이미 인간의 발자국이 찍혔으며, 패스파인더(미국의 무인 화성 탐사선)는 화성의 어느 골짜기에서 추위를 견디며 길을 찾고 있다. 마음에서 잊힌 곳을 찾아간다고 했을 때, 오지라는 말은 비로소 원래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지는 깊은 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닿고자 하는 바람으로서의 심원으로도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내 발길이 닿지 않은 서울 하늘 아래 어느 좁은 골목도 오지요, 강과 계곡의 깊숙한 곳 또한 오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10)" 하지만 오지란 살 곳이 못 된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집을 짓지 않고 떠나는 첫사랑처럼, 사람들은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그곳에 있지 않다. 늘 무언가를 찾아서, 누군가를 잊으려 길을 떠나지만, 차마 인연의 끈을 내려놓지 못하고 잠시 벗어 둔 옷가지를 챙기듯 주섬주섬 다시 싸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20)"
굴업도에 간 이기와 시인은 비단고둥을 보며 명상한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비단고둥은 움직임 없이 간다. 그의 움직임의 과정을 목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그가 남긴 흔적만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을 뿐이다. 그의 흔적을 확인하는 것조차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달랑게가 그의 옆을 지나갔다. 너무도 빨리 지나갔기 때문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후에 알았다. 너무 느려도 보이지 않고, 너무 빨라도 보이지 않는 이런 법法, 자연법의 이면을 투시하고 참구하는 것이 명상이라는 것인가?(114)"
김규성 시인은 "발명과 발견은 새롭다는 점에서는 어슷비슷하지만 그 근원과 결과는 영 딴판이다. 기존의 사물을 이합집산하여 새로운 용도를 덧붙이는 게 발명인 반면에 미처 눈에 띄지 못한 은닉을 찾아내 새로이 기리는 게 발견이다. 발명이 다다익선을 핑계로 한 문명의 기호학이라면 발견은 잠든 사실을 일깨운 문화의 고고학이다. 발명은 주로 손과 머리로 하지만 발견은 대개 발품을 팔아서 한다.(270)"며 오지는 발품에 의해 어렵사리 발견당하며 베일을 벗는다고 한다.
김규성 시인은 도로를 벗어나 오지를 여행하라고 한다. "산에는 길이 셋이다. 입산 자격을 상실한 담뱃불의 이기적 부주의만 아니라면 굳이 그 흉허물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될 임도가 있고, 버젓한 남의 산에 허락도 없이 인적을 짱박아 놓은 등산로가 있고, 그 무지막지한 횡포를 어렵사리 비켜서서 토박이 주인이면서도 오히려 도둑처럼 숨을 졸여 다니는 호젓한 산짐승들의 길들이 따로 있다. 산짐승들의 길은 폭이 좁은 반면 발자국이 한결 두렷하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고라니, 멧돼지, 살쾡이, 토끼들의 자취를 본숭만숭 더듬을 수 있다. 운 좋으면 누군가 방목하다가 놓쳤을 흑염소가 생파같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풍경도 만날 수 있다.(278)" 다만, "오지를 입에 올리려면 현지에서 최소한 강산이 한 번쯤 변하는 십여 해는 나고 봐야 그 맛과 속내를 따따부따할 수 있다(281)"며 감상적 어투로 감히 오지를 말하지 말라고 한다.
"오지를 여행하는 즐거움은 자연과 가까워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멀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번잡한 문명과 사회제도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오지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오지는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곳, 모르는 곳은 모두가 오지입니다. 내 마음 속에도 오지가 있고,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도 오지가 있습니다. 오지를 찾으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먼저 주위를 둘러보시기 바랍니다.(198)" 이진우 시인은 우리 주위에 오지가 되어가는 곳을 살펴보라고 당부한다.
23명의 시인들이 민통선에서 제주도까지 오지를 찾아 다니며 쓴 오지 안내서를 읽으면 오지는 어디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아 왕따가 된 오지가 도처에 있지만, 느리게 걷지 않으면 오지는 어디에도 없다.
시인의 오지 기행/박후기 외/문학세계사 20120625 336쪽 14,000원
덧. 오탈자
237쪽 식석기 시대의 간석기도 → 신석기 시대의 간석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