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케인스 - 다음 세대가 누릴 경제적 가능성
-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우리 안의 옛 아담1의 세속적 본능이 너무 강해져서, 이를 충분히 만족시키려면 다들 어느 정도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부유층과는 달리 우리 자신을 위해 더 일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소한 작업이나 임무, 일과도 신이 나서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버터 위에 빵을 얇게 펴 바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즉 이미 우리 사회가 가진 것들을 가능한 한 더 폭넓게 누릴 수 있도록 애쓸 것이다. 3교대로 일하거나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아주 오랫동안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3시간 정도의 일이면 우리 대부분이 내면의 세속적 본능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55)
- 문제의 본질은 케인스가 그 어디에서도 분배에 대해 충분히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들의 경제적 욕구를 충분히 만족할 정도의 소득을 얻지만, 아직도 세계 인구의 약 50%는 하루에 2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중 약 10억 명은 하루에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연명한다. 이런 사람들은 매일 먹고사는 경제 문제를 겪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들이 직면한 문제에 아직 답을 주지 못했다. (88)
- 케인스는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에서 "경제 문제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거나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그보다 더 위대하고 영구적 중요성이 있는 다른 문제들을 희생하면 안 된다..."라고 결론짓는다. 한편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케인스가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근본적으로 틀렸다. 적어도 일부 국가에서는, 그리고 보편적으로 가장 성공했다고 인식되는 국가들에서는 경제 체제가 만족을 모르는 욕구를 만들어냈다. 이런 욕구로 인해 우리가 인식하는 경제적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더 위대하고 영구적 중요성을 가진 다른 문제들'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 제단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124)
- 답은 꽤 명확해 보인다. 우리의 손자 손녀, 혹은 그들의 손자 손녀들이 진정으로 생존 가능한 세상에서 살려면 자본의 소유가 민주화되어야 한다. 만약 자본이 주된 수입의 유일한 원천이 된다면 중요한 이들 모두가, 즉 모두가 자본 소득에 대한 적절한 청구권을 가져야 한다. 자본의 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많다. 그 장치가 강제적 저축이든, 보편적 배당이든, 연기금의 확대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창성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이 진전되지 않았다. 다행히 케인스와 반대로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윈체스터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에도 희망을 걸 수 있다. (171)
- 역설적이지만 케인스는 노동, 소비 그리고 투자 등에 대한 유인을 변경하는 정책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비시장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케인스가 21세기에 실현된다고 예견했던 여가로 가득한 세상은 아직 실현될 조짐이 전혀 없다. 그래서 높은 여가 수준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나도 우리 사회가 충분히 부유해져서 개인이 원하면 여기를 더 쓸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여가의 선택이 노동과 저축의 유인을 억누르는 정부 정책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209)
- 일단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그 범주에 속하는 상품은 열등해진다. 소득이 증가하면 그런 열등재에 지출되는 비율이 감소하는데, 필수재 성격이 약한 상품의 소비는 일정 수준으로 계속 건재하지만 그런 상품들도 결국은 열등해진다. 그런 점에서 소득증가에 따른 일반적인 조정 원리는 '버터 위에 빵을 얇게 펴 바르는' 것과 같다. (219)
- 케인스의 손자 손녀 세대가 이렇게 많이 일하기로 결심한 것은 노동시간과 급여 사이에 역으로 나타났던 역사적인 관계가 역전된 것과 관계가 깊다. 과거 수십 년 동안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더 많이 일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오래 일해야만 했다. 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반면 부유한 사람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세습된 사회적 지위를 가진 덕분에 원하는 만큼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유한계급이라는 말의 의미만 봐도 알 수 있다. (255)
-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든 왜 카르페 디엠2이 내일, 심지어 모레에 대비한 행위보다 항상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지 납득하기 어렵다. 자본주의가 가진 도덕적 힘은 세대 사이에 이타주의를 이끄는 결과주의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에드먼드 펠프스가 노벨상 강연에서 역설했듯 이 기업가적 자본주의를 통해 좋은 경제가 좋은 삶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298)
- 결론부터 말하겠다. 케인스가 제시한 경제 이론은 틀렸고, 그가 거론한 사실들도 틀렸다. 하지만 그가 미래에 대해 품었던 모든 질문과 추측은 옳았고, 이는 사소한 업적이 아니다. 이는 그가 다소 거만했지만 분명 바보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해줄지도 모른다. 사실 케인스는 총명했고, 어쩌면 너무 총명해서 청중에게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실히 설득하기 위한 논리적 일관성과 사실들에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307)
- 결국 오늘날 우리는 케인스의 예상과는 한참 다르게, 생산성의 향상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대신 관계라는 상품이 질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 이 증거는 잘 알려진 속설을 입증하는 동시에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즉 선진국의 구성원들은 금전적으로는 부자지만 시간적으로는 가난하고, 덜 부유한 나라의 구성원들은 금전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시간적으로는 더 부자라는 점이다. 요약하자면, 이 문제에 있어서는 케인스의 직관을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소득이 증가하고 소득과 개인의 행복과의 관계가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됨에 따라 우리는 비물질적 재화의 중요성을 더 많이 알게 된다. (365)
- 어차피 인간이 짊어진 노동이라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면, 사회적 책임의 경제학과 시장 사회적 기업이 인간의 기업가 정신이 물질적 재화보다 사회적 포용이라는 더 고매한 목표를 추구하도록 압박함으로써 사회적, 환경적 불균형을 해소할 필요와 우리의 생산적 노력을 덜 곤욕스럽고 더 보람 있게 만드는 꿈을 조화롭게 만들지도 모른다. (372)
다시, 케인스Revisiting Keynes, 2008/존 메이너드 케인스 외/김성아 역/포레스트북스 20231004 420쪽 22,000원
케인스가 1930년에 발표했던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에세이를 21세기 경제 석학들이 평하는 책입니다. "앞으로 100년 후에는 선진국의 생활 수준이 오늘날보다 4배에서 8배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라는 케인스의 예언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어 일과 저축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미래는 오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오른쪽부터 왼쪽에 이르는 경제학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알려줍니다.
지배적인 전망은 "사랑할 수 없지만 피할 수도 없는 자본주의"라서 당분간은 케인스가 말한 세상이 도래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2130년까지 우리의 손자 손녀들에게 케인스가 말한 세상을 물려줄 시간과 기회가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지배적인 전망은 "사랑할 수 없지만 피할 수도 없는 자본주의"라서 당분간은 케인스가 말한 세상이 도래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2130년까지 우리의 손자 손녀들에게 케인스가 말한 세상을 물려줄 시간과 기회가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 old Adam: 원죄를 짊어진 인간, 혹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세속적이고 악한 면을 말한다.
-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