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의 도시 가이드
FBI의 정의에 따르면 '중범죄 혹은 절취竊取를 목적으로 건조물建造物에 불법적으로 진입하는 행위'를 침입절도라고 한다. '침입절도가 성립하려면 범인이 건축구조에 불법으로 진입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단순 절도, 소매치기, 강도(42)'와는 다른 공간 범죄이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 〈이탈리안 잡〉, 〈인셉션〉 등을 떠올리면 된다. '침입절도는 대도시의 원죄다. 그도 그럴 것이 무단으로 침입하려고 했던 자들의 이야기를 빼고 나면 한 건물에 대해 이야기할 게 많지 않을 테니까. 침입자들은 건축의 정사正史에 들어가지 못한 일탈적 존재면서도 건축물 자체만큼이나 오랫동안 건축이라는 이야기를 구성해온 필수 요소다(20)'.
사람들이 건축물을 처음 볼 때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정문이 아니라 다락 창문이나 지하 대피소, 허술한 방충망을 찾아낸다. 그렇다면 '도둑들의 방식으로 건물을 본 것이다(41)'. '어떻게 보면 도둑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건축을 잘 이해하는 자들이다. 건물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무단으로 들락거리고, 건물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한계를 무시한다. 일단 문이 필요 없다. 벽에 구멍을 뚫거나 천장을 잘라내면 되니까(22)'.
도둑은 '문도 벽도 지붕이나 천장도 없는 세계, 즉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 같다. 침입절도는 다른 세계로(최소한 다른 방이나 건물로) 이어진 흐물거리는 벽이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입구로 이루어진 매트릭스의 물리적 재현이다. 당장은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두 개의 방은 결국 머지않아 이어진다.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면, 도둑은 캘리포니아에서 헐값에 구한 고물 채굴 장비로 터널을 뚫어서라도 두 건물 사이의 이동 경로를 확보한다. 건축물을 오용하고, 남용하고, 건축 목적과는 정반대로 이용함으로써 이들은 건물들의 '진짜' 사용법을 밝혀낸다(22)'.
'고층 아파트든 미술관이든 간에 건축물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반응은 건축가가 아닌 그 건물에 침입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 그들은 범행을 위해 건물의 문과 창문을 면밀히 관찰하고, 감시 카메라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몰래 복도를 돌아다니고, 건물 사용 시간이나 빈틈을 알아내기 위해 하루종일 기다리기도 한다(39)'.
'그 건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거주민도, 건축가도, 건물주도 아니다. 메이슨은 "아파트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수많은 기술art에 통달한 저평가된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은 전기기술자고, 배관공이자 목수고, 석공이자 도장공이며, 열쇠·유리 기술자면서 기계공학자입니다. 그 모든 일을 하루 안에도 해치우는 사람들이죠"라고 말한다. 그들은 건물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이들이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소유주들조차 가보기는커녕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빌딩의 모든 부분들, 그러니까 미로 같은 건물의 이면과 공간, 후미진 복도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데다 그 '부분'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알고 있다(104)'.
도둑은 '설계된 모든 건물에 대해 그 건물에 침입하고 보안에 대한 건축가의 절대적인 감각을 약화시킬 계획(315)'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둑은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패턴으로 알아낸다. '예를 들어 건물 외부에 있는 화재용 비상계단이나 비상구의 위치와 개수 등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을 찾거나 범행의 필요조건을 찾는 표식으로 활용했다. 소방시설은 아파트 한 층에 몇 가구가 있는지, 각 가구의 면적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등 많은 것을 알려준다(110)'. '사각지대, 취약점, 위치를 잘못 잡은 창문, 그림자 진 알코브, 천장의 잠그지 않은 채광창, 건물과 건물 사이의 적당한 거리와 같은 것이 바로 도둑이 포착하는 기회(43)'가 된다.
침입범죄를 도시에서 몰아내겠다는 생각은 우리 시대에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19세기 파리에서 도시 행정관 조르주외젠 오스망Georges-Eugene Haussmann은 황제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의 명령에 따라 유례없이 야심찬 도시 개선 사업을 연이어 시행했다. 그는 마을 몇 개를 파괴하면서까지 파리 중심부의 모든 도로를 밀어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곳에 오늘날 파리를 대표하는 넓고, 나무가 무성하며 아름다운 대로를 만들었다. 심미적 이유가 아닌 경찰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반군이나 혁명 세력이 숨거나 도망칠 수 있는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뒷골목을 없앴다. 바리케이드를 세울 수 없도록 넓은 도로를 닦았다. 이렇게 재설계된 파리의 도시 조경은 그 자체로 경찰의 유용한 도구가 됐다. 도시 중심이 너무나 급속하게 재편성됐기 때문에 이후 대중의 봉기는 공간적으로 불가능해졌다(272)'.
요즘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포스팅을 보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빈집을 터는 '페이스북 도둑'이나 사무실을 털고 온 도둑에게 직원들의 휴가 일정표 복사본을 사서 털기도 한다. '빈집털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에 관한 일반 법칙 따위는 없다. 가장 일반적인 요소들도 언제, 어디서 다음 빈집털이가 일어날지 예상하는 데 다소간 도움이 되는 정도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특수를 예방하기 위해 쌓은 방벽은 때로 가장 기이한 범죄를 불러들이는 입구가 되기도 한다(157)'. 이러한 침입절도 범죄는 '강간에 이어 정신건강에 두 번째로 큰 피해를 끼치는 범죄'이다. '이는 여러 사회학적 논문이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종류를 불문하고, 침입절도 사건은 배신감이나 피해망상 같은 강렬한 정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고, 사건 발생 전 이웃과의 아주 사소한 접촉도 사건 후에는 그들이 범행에 관여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이어져 심신을 쇠약하게 한다(208)'.
'도둑의 눈으로 보았을 때 건물의 진짜 출입구가 어디인지를 염두에 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다. 도둑의 출입구는 현관문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만들어내는 구멍이다. 그들은 취약한 세계의 입구인 문 주위에 무방비로 존재하는 표면을 잘라내고 새로운 출입구를 만든다. 도둑들은 기존 세계의 문법을 거부한다. 사람들이 기존 세계의 문법에 최면이 걸려 있는 동안 그들은 우회하고, 구멍 내고, 그 아래로 파고들면서 모든 범죄를 일종의 '터널 파기'로 만든다. 벌레처럼 기어서 건축물을 통과하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도구도 만들어냈다(213)'. 도둑처럼 보면 '가장 지루하고 평범한 주위의 건물과 도시 경관도 에펠탑이나 런던 의회당같이 놀랍고 경탄스러운 세계적 랜드마크(251)'가 된다.
'모든 침입절도는 따라서 반설계적인 행위다. 건축가에 대한 응답이며, 도둑과 건축물의 관계에 일어나는 변화의 순간이다(313)'. 저자는 '건축의 디테일 속에 숨은 악마, 도둑이 건물의 다른 용도를 알려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302)'을 들춰내며 규칙을 어기려는 실패한 도둑을 조명하고 있다. '어리석음과 천재성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도시 가이드' 즉, '얼간이용 가이드, 바닥과 천장을 사용할 줄 모르고 문과 창문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과장을 보태면 땅속에 터널을 파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인 '도둑을 위한 가이드(45)'는 그래서 재밌다.
저자가 '지난 30년간 만들어진 영화 중 독보적으로 가장 뛰어난 건축영화이자 건축 오용에 대한 영화(261)'라고 극찬한 〈다이하드〉를 도둑의 시선으로 다시 봤다.
도둑의 도시 가이드A Burglar's Guide to the City, 2016/제프 마노Geoff Manaugh/김주양 역/열림원 20180620 352쪽 15,000원
사람들이 건축물을 처음 볼 때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정문이 아니라 다락 창문이나 지하 대피소, 허술한 방충망을 찾아낸다. 그렇다면 '도둑들의 방식으로 건물을 본 것이다(41)'. '어떻게 보면 도둑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건축을 잘 이해하는 자들이다. 건물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무단으로 들락거리고, 건물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한계를 무시한다. 일단 문이 필요 없다. 벽에 구멍을 뚫거나 천장을 잘라내면 되니까(22)'.
도둑은 '문도 벽도 지붕이나 천장도 없는 세계, 즉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 같다. 침입절도는 다른 세계로(최소한 다른 방이나 건물로) 이어진 흐물거리는 벽이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입구로 이루어진 매트릭스의 물리적 재현이다. 당장은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두 개의 방은 결국 머지않아 이어진다.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면, 도둑은 캘리포니아에서 헐값에 구한 고물 채굴 장비로 터널을 뚫어서라도 두 건물 사이의 이동 경로를 확보한다. 건축물을 오용하고, 남용하고, 건축 목적과는 정반대로 이용함으로써 이들은 건물들의 '진짜' 사용법을 밝혀낸다(22)'.
'고층 아파트든 미술관이든 간에 건축물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반응은 건축가가 아닌 그 건물에 침입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 그들은 범행을 위해 건물의 문과 창문을 면밀히 관찰하고, 감시 카메라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몰래 복도를 돌아다니고, 건물 사용 시간이나 빈틈을 알아내기 위해 하루종일 기다리기도 한다(39)'.
'그 건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거주민도, 건축가도, 건물주도 아니다. 메이슨은 "아파트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수많은 기술art에 통달한 저평가된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은 전기기술자고, 배관공이자 목수고, 석공이자 도장공이며, 열쇠·유리 기술자면서 기계공학자입니다. 그 모든 일을 하루 안에도 해치우는 사람들이죠"라고 말한다. 그들은 건물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이들이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소유주들조차 가보기는커녕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빌딩의 모든 부분들, 그러니까 미로 같은 건물의 이면과 공간, 후미진 복도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데다 그 '부분'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알고 있다(104)'.
도둑은 '설계된 모든 건물에 대해 그 건물에 침입하고 보안에 대한 건축가의 절대적인 감각을 약화시킬 계획(315)'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둑은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패턴으로 알아낸다. '예를 들어 건물 외부에 있는 화재용 비상계단이나 비상구의 위치와 개수 등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을 찾거나 범행의 필요조건을 찾는 표식으로 활용했다. 소방시설은 아파트 한 층에 몇 가구가 있는지, 각 가구의 면적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등 많은 것을 알려준다(110)'. '사각지대, 취약점, 위치를 잘못 잡은 창문, 그림자 진 알코브, 천장의 잠그지 않은 채광창, 건물과 건물 사이의 적당한 거리와 같은 것이 바로 도둑이 포착하는 기회(43)'가 된다.
침입범죄를 도시에서 몰아내겠다는 생각은 우리 시대에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19세기 파리에서 도시 행정관 조르주외젠 오스망Georges-Eugene Haussmann은 황제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의 명령에 따라 유례없이 야심찬 도시 개선 사업을 연이어 시행했다. 그는 마을 몇 개를 파괴하면서까지 파리 중심부의 모든 도로를 밀어버리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곳에 오늘날 파리를 대표하는 넓고, 나무가 무성하며 아름다운 대로를 만들었다. 심미적 이유가 아닌 경찰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반군이나 혁명 세력이 숨거나 도망칠 수 있는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뒷골목을 없앴다. 바리케이드를 세울 수 없도록 넓은 도로를 닦았다. 이렇게 재설계된 파리의 도시 조경은 그 자체로 경찰의 유용한 도구가 됐다. 도시 중심이 너무나 급속하게 재편성됐기 때문에 이후 대중의 봉기는 공간적으로 불가능해졌다(272)'.
요즘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포스팅을 보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빈집을 터는 '페이스북 도둑'이나 사무실을 털고 온 도둑에게 직원들의 휴가 일정표 복사본을 사서 털기도 한다. '빈집털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에 관한 일반 법칙 따위는 없다. 가장 일반적인 요소들도 언제, 어디서 다음 빈집털이가 일어날지 예상하는 데 다소간 도움이 되는 정도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특수를 예방하기 위해 쌓은 방벽은 때로 가장 기이한 범죄를 불러들이는 입구가 되기도 한다(157)'. 이러한 침입절도 범죄는 '강간에 이어 정신건강에 두 번째로 큰 피해를 끼치는 범죄'이다. '이는 여러 사회학적 논문이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종류를 불문하고, 침입절도 사건은 배신감이나 피해망상 같은 강렬한 정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고, 사건 발생 전 이웃과의 아주 사소한 접촉도 사건 후에는 그들이 범행에 관여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이어져 심신을 쇠약하게 한다(208)'.
'도둑의 눈으로 보았을 때 건물의 진짜 출입구가 어디인지를 염두에 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다. 도둑의 출입구는 현관문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만들어내는 구멍이다. 그들은 취약한 세계의 입구인 문 주위에 무방비로 존재하는 표면을 잘라내고 새로운 출입구를 만든다. 도둑들은 기존 세계의 문법을 거부한다. 사람들이 기존 세계의 문법에 최면이 걸려 있는 동안 그들은 우회하고, 구멍 내고, 그 아래로 파고들면서 모든 범죄를 일종의 '터널 파기'로 만든다. 벌레처럼 기어서 건축물을 통과하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도구도 만들어냈다(213)'. 도둑처럼 보면 '가장 지루하고 평범한 주위의 건물과 도시 경관도 에펠탑이나 런던 의회당같이 놀랍고 경탄스러운 세계적 랜드마크(251)'가 된다.
'모든 침입절도는 따라서 반설계적인 행위다. 건축가에 대한 응답이며, 도둑과 건축물의 관계에 일어나는 변화의 순간이다(313)'. 저자는 '건축의 디테일 속에 숨은 악마, 도둑이 건물의 다른 용도를 알려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302)'을 들춰내며 규칙을 어기려는 실패한 도둑을 조명하고 있다. '어리석음과 천재성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도시 가이드' 즉, '얼간이용 가이드, 바닥과 천장을 사용할 줄 모르고 문과 창문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과장을 보태면 땅속에 터널을 파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인 '도둑을 위한 가이드(45)'는 그래서 재밌다.
저자가 '지난 30년간 만들어진 영화 중 독보적으로 가장 뛰어난 건축영화이자 건축 오용에 대한 영화(261)'라고 극찬한 〈다이하드〉를 도둑의 시선으로 다시 봤다.
도둑의 도시 가이드A Burglar's Guide to the City, 2016/제프 마노Geoff Manaugh/김주양 역/열림원 20180620 352쪽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