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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법칙

나와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느끼게 되는 고통이 나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은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고 같이 울기 시작하는 아이나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괜히 즐거워지는 식의 감정의 전이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전이를 넘어 공감에 이르기 위해서는 ①상대방도 나와 동일한 인격 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고, ②나를 상대방의 처지에 놓으려는 상상력 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③상대방이 그 상황에서 느끼게 될 고통이 내가 그 처지에 있을 때 느끼게 될 고통과 다르지 않다 고 여겨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④나 역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는, 그가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우연의 결과일 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역지사지가 가능해야 우리의 공감은 편협한 치우침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 처지에 놓였더라면 이런 어려움을 겪겠구나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면, 공감은 확장된 범위에서 이루어질 뿐 아니라 불편부당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 공감이 발동되고, 연민에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단계는 우리를 그들의 처지에 놓고,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들이 단지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하는 고통을 상상해내는 일이다. 나는 우연히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자 임을 자각하고, 우연히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을 공감할 때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편부당성을 갖출 때 우리의 공감은 제도적 토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자리에 쿠르디를 놓든, 강남역에서 살해당한 20대 여성을 놓든, 아니면 구의역에서 생을 마감한 청년을 놓든 마찬가지다. - 최정규, 공감의 법칙…배우고 투쟁하고 노력하라 12·3내란사태가 일어나자 수괴를 닮은 괴물이 너무 많이 나타났다. 공감은커녕 측은지심 과 수오지심 도 없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모습이지만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 분명하다. 굳이 인간이라면 성악설...

혁명의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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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인류가 집단적으로 살면서 구현하는 지진이며, 개인의 성격이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지휘할 수 있지만 혁명을 창조하거나 방해하지는 못한다. (32) 모든 혁명은 나름의 원인을 초월하며, '자연스러운' 사물의 경로를 뒤바꾸는 고유한 동학을 따른다. 혁명은 인간의 발명품으로, 불가피한 발생을 드러낸다기보다는 유의미한 별자리의 랜드마크로서 집단적 기억을 건설한다. 혁명이 역사적 진행의 정기적이고 누적적인 시간에 속한다는 믿음은 20세기 좌파 문화의 가장 커다란 오해 중 하나였고, 너무도 자주 진화론의 유산과 진보 이념의 짐을 짊어졌다. (35) 혁명은 들숨과 날숨을 쉬는 역사다. 혁명을 근대의 랜드마크이자 역사적 변화의 전형적 순간으로 복원한다고 해서 혁명을 낭만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혁명을 서정적으로 회고하고 우상적으로 재현하기 쉽다고는 해도 비판적 시선으로 그 해방적 특징뿐만 아니라 주저와 모호함, 잘못된 길과 철수를 파악하는 것이 방해받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이 혁명의 여러 모순적 잠재력에 속하며, 혁명의 존재론적 강도에 들어 있다. 사회 세력과 정치적 목표—종교,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농민, 민주주의, 사회주의, 반식민, 반제국주의, 민족, 심지어 파시스트 혁명까지—에 따라 혁명을 나누는 고전적 분류는 흔히 연대기적·정치적 경계를 넘나드는 혁명의 정서적 차원을 파악하고자 하는 역사학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 연속체의 극적인—대부분 폭력적인— 단절로서 혁명은 강렬하게 체험된다. 인류는 혁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정신적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다량의 에너지와 정념, 정동情動과 감정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혁명에 미학적 전회 aesthetic turn 가 담겨 있거나 그런 전회가 발생한다. (36) 파시즘은 혁명의 수사를 구사하긴 했지만 분명 반혁명적 성격을 드러냈다. (38) 혁명은 의식적으로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반역이다 . (41)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좋든 나쁘든 간에 혁명이다. 여기서...

위첨자(sup)와 아래첨자(sub) 쓸 때 줄간격 조정하기

위첨자(sup)와 아래첨자(sub) 기본 속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sup { vertical-align: super; font-size: smaller; } sub { vertical-align: sub; font-size: smaller; } 위첨자나 아래첨자가 들어간 문장은 줄간격(행간, line-height)이 조금 커집니다. 다음과 같은 속성을 추가하면 줄간격이 같아집니다. 1 sup { line-height: 1em; } sub { line-height: 1em; } 위첨자나 아래첨자 높낮이를 바꾸려면 다음과 같이 하면 됩니다. sup { line-height: 1em; position: relative; top: -2px; sub { line-height: 1em; position: relative; top: 2px; } 이 블로그는 위첨자 색깔을 지정하고, 특별한 수식이 아니면 아래첨자는 문장 기준선에 맞췄습니다. sup { color: #cc0000; line-height: 1em; } sub { vertical-align: baseline; line-height: 1em; } 주석 기능(Footnote)을 쓸 때 본문 줄간격 고르게 맞추기

다시, 케인스 - 다음 세대가 누릴 경제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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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우리 안의 옛 아담 1 의 세속적 본능이 너무 강해져서, 이를 충분히 만족시키려면 다들 어느 정도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부유층과는 달리 우리 자신을 위해 더 일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소한 작업이나 임무, 일과도 신이 나서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버터 위에 빵을 얇게 펴 바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즉 이미 우리 사회가 가진 것들을 가능한 한 더 폭넓게 누릴 수 있도록 애쓸 것이다. 3교대로 일하거나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아주 오랫동안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3시간 정도의 일이면 우리 대부분이 내면의 세속적 본능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55) 문제의 본질은 케인스가 그 어디에서도 분배에 대해 충분히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들의 경제적 욕구를 충분히 만족할 정도의 소득을 얻지만, 아직도 세계 인구의 약 50%는 하루에 2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중 약 10억 명은 하루에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연명한다. 이런 사람들은 매일 먹고사는 경제 문제를 겪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들이 직면한 문제에 아직 답을 주지 못했다. (88) 케인스는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에서 "경제 문제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거나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그보다 더 위대하고 영구적 중요성이 있는 다른 문제들을 희생하면 안 된다..."라고 결론짓는다. 한편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케인스가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근본적으로 틀렸다. 적어도 일부 국가에서는, 그리고 보편적으로 가장 성공했다고 인식되는 국가들에서는 경제 체제가 만족을 모르는 욕구를 만들어냈다. 이런 욕구로 인해 우리가 인식하는 경제적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더 위대하고 영구적 중요성을 가진 다른 문제들'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 제단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 (124) 답은 꽤 명확해 보인다...

불 꺼진 공장과 노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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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ture of Work 자본은 착취를 통해 이윤을 만듭니다. 자본은 지뢰마저 상품으로 둔갑시켜 지구 구석구석에 팔아먹었습니다. 급기야 어린아이의 몸을 산산조각 나게 했습니다. 국제정치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내가 한창 자라나고 있을 땐 세상이 달랐다. 이윤이란 것은 최대화하는 게 아니라 절절해야 하는 시대였다" 1 고 회고합니다. 냉전 시대는 소련식 사회주의와 경쟁하려고 자본과 노동이 사회민주주의적 협약 형태를 띤 겸손한 자본주의 였다는 의미입니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교묘하게 변신해서 경제 유형만이 아니라 사회의 유형이 됐다며 미국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지금을 식인 자본주의 라고 명명했습니다. 케인스가 1930년에 발표했던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에세이 에서 100년 후에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00여 년이 지나 생활 수준은 몇 배나 높아졌지만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어 일과 저축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이라는 공유경제 는 부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주문 8분 만에 오는 퀵 배달 은 정상 속도가 아닙니다.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해서 만들어내는 결과입니다. 사람을 갈아 넣어 이루는 것은 기술혁신이 아닙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착취 경제입니다. 미래의 공장은 불 꺼진 공장입니다. 발전하는 기술은 자동화가 쉬워지고 저렴해지면서 완전 자율화 공장으로 갈 것으로 예측합니다. 사람 없이 로봇이 24시간 운전하는 무인 자동화 공장은 조명이 필요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포장하며 변신한 포스트 자본제 시대 2 에는 중요한 역할은 AI가 하고 사람은 허드렛일만 할 거라고 우려합니다. 결국 승자는 AI 뒤에 숨은 자본일 겁니다. 자본은 인간을 필요 이상으로 노동하도록 강제합니다. 자본은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윤리...

체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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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ziziree 공쳤고요 수괴에게 처맞았어요 오전에만 똥폼 잡다 운명했어요 빙신임이 신박하게 들통났어요

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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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날의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와 5·18 당시의 국가 폭력이 여타 폭력들과는 구별되는 다른 성격이었다면, 우리는 통상 학살로 칭하는 이 폭력의 독특한 성격에 주목해야만 한다. 즉 '반대파에 대한 산발적인 폭력이나 고문 등 여타의 억압 수단을 동반하는 국가 테러'와 '정책 결정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정책인 학살'을 구분해 분석할 때만이 오월광장의 의문에 답할 수 있는 학술적 통로를 열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5·18 연구의 무게중심을 피해자의 서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가해자에 대한 논의로 이동시키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7)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이승만의 언술은 이 같은 최고지도자의 행동양식과 동인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국민은 민권의 자유를 보호할 담보를 가졌으나 이 정부에 불복하거나 전복하려는 권리를 허락한 일이 없나니 어떤 불충분자가 있다면 공산분자 여부를 막론하고 혹은 개인으로나 도당으로나 정부를 전복하려는 사실이 증명되는 때에는 결코 용서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최초 정부의 출범 선언은 국민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시작된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반공이 하나이며, 자신에 대한 반대도 국가에 대한 반역이라는 걸 공식화한 것이다. (20) 더불어 한국의 경우 정규군이 학살에 참여하는 주요 동인으로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요소(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동료집단의 압력과 집단의 순응성, 이데올로기 주입 효과)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근대 정규군의 일반적 특성으로 일컫는 '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문화다. '한국군은 그 모태가 된 일본군, 더 좁게는 일본 육사 출신'의 영향으로 미국이나 여타 서구에 비해 훨씬 강력한 "계급별, 학년별, 선후배별 지배와 복종 관계가 철저히 관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4) 한국군은 해방 정국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근대국가 건설기와 베트남전 당시 해외 파병에서 이미 두 차례...

내란,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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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민, 당신이 희망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안귀령 대변인은 국회의원들의 집결을 막으려는 군인들과 맞설 때 "내 머릿속엔 오직 그들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들을 밀쳐내고, 떨쳐내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고 말했다 . 청년 은 국회로 출동하는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섰다. 굥서결이 불법계엄을 선포하자마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이 나라를 구했다. 인생을 빚졌다. 2. 노벨문학상 한강 ,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다 한각 작가가 12월 10일 16시(현지시각)에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시상식 후 열린 연회에서 한강 작가는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강연 에서는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했다. 3. 탄핵소추안 가결, 내란공범·공감범이 부지기수 다 20241207(토) 21:26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1차 탄액안 폐기 20241214(토) 17:00 탄핵소추안 가결 19:24 대통령 직무정지 ( 내란 1차진압) 4. 남태령대첩 , 시민 달려가다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남태령에서 굥찰(내란수괴 굥서결에 동조하는 경찰)에게 막히자 시민들이 남태령으로 모였다 . 동지(冬至)였다. 밤샘 투쟁을 하며 남태령 대치 29시간만에 차벽을 뚫고 전봉준투쟁단이 한남동...

차녀 힙합 - 집밖의 세계를 일구는 둘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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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녀가 이렇게 구구절절 서러운 줄 몰랐습니다.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잉여'이자 '덤'으로 여겨(12)'지고, '첫째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중압감을 느낀다면 차녀는 어둠 속에서 대사 한 줄이라도 더 얻어보려고 발버둥치는 무명배우 같(21)'거나, 차녀가 '소유하는 모든 것이 중고(133)'인 줄 몰랐습니다. 작가처럼 '아들을 낳기 위한 여정에 잘못 도착한 택배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낀 딸'일(12)' 때는 더욱 말이죠. 차녀는 세 갈래로 나뉩니다. '딸이 둘 있는 집의 차녀는 차녀이자 막내'이고, '밑에 여동생이 있는 차녀는 차녀 카테고리에서 다시 중녀로 분류'되고, '세 자매 중 둘째는 막내인 차녀보다 애매한 존재라 아래위로 치(254)'입니다. 차녀 앞에는 세 갈래의 미래가 나타납니다. '부모님이 세번째 출산을 감행하여 아들이 태어남으로써 중간에 낀 딸이 되거나, 세번째도 딸이어서 세 자매 중 중녀가 되거나, 이대로 차녀이자 핵가족 시대의 새로운 막내로 살아가거나. 어느 길로 가든 다른 갈래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88)'습니다. 중간 아이 콤플렉스 Middle child syndrome 라고 있습니다. '가운데 아이는 출생 순서상 집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되거나 방치될 가능성이 높기에, 사진도 가장 적고 양육자가 그들의 특성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19)'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짬 처리반으로 살며 몸에 익힌 생존 기술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주변을 두루 돌보고 항상 배려해야 한다는 한국 여성 훈육법과 만나 시너지(69)'를 냅니다. 식빵으로 비유하자면 차녀의 몫은 언제나 테두리입니다. '딸이 둘 이상인 집에서 스타일 차이가 생기는 데에는 출생 순서에 따른 양...

왜 쪽방촌 사람들은 2찍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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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은 정치적으로 진보적 색채가 강하리라는 예측과 달리 상당히 보수적이다. 주민활동가를 제외하고는 연령이 가난보다 우선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실제로 쪽방에서 각종 고통을 겪으면서도 보수적 텍스트가 부착된 쪽방들이 적지 않고, 투쟁이라는 용어를 꺼리거나 반공주의적 태도를 명시적·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거주자들도 많다. 거주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소위 '없는 사람'이 분노할 것처럼 보여도, 현실에서는 먹고살기 위해 '있는 사람'에게 붙는다. 쪽방촌에는 건물주와 관리인의 하수인 역할을 하며 조금 덜 불편하게 살려는 거주자들도, 기관들에 잘 보여서 하나라도 더 받아 내려는 거주자들도 있는 법이다. 이들에게 투쟁은 골수분자들이 하는 일이자 주는 것 없이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나갈 이유가 없는 먼 곳이며, 데모하는 데는 사람 다 버린다고 절대 가지 말라고 만류할 정도의 기피 대상이었다. 사랑방은 투쟁을 독려하는 텍스트를 종종 배포하나 강제가 아닌 자유의 영역으로 두기 때문에 거주자들은 자유의지에 따라 가거나 가지 않기를 선택하는데, 대개 후자에 몰린다. 쪽방촌에서 빈곤층이 보수화되는 주요한 이유는 특정 변화가 초래할 수 있는 피해가 빈곤층에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거주자들에게는 평생 빈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분노보다 '이마저도 빼앗기거나 더 추락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큰 경향이 있으며, 그들은 어떤 변화도 원치 않는다. 진보는 변혁하고 움직여야 하는 에너지가 필요한 반면 보수는 현상을 유지하면 되므로 추가적 에너지가 불필요하기 때문 이다. 거주자 독고천은 투쟁을 나가지 않는 근본적 이유로 '살기 위한 죄책감'을 든다. 자신의 쪽방 거주는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덜 괴로우며 털고 일어날 수 있지, 부당하다고 사회 탓을 하면 당장 삶이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되레 더 괴롭다 는 의미다. "내 책임으로 돌려야 그래도 인정하고 살 수 있어요. 내 탓이 아니라 사회 ...

남태령, 2024년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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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동지는 유난히 긴 밤이었다. 밤이 깊을수록 시민은 더 강하게 연대 했다. 추울수록 더 뜨겁게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동지에 동지가가 울려 퍼졌다. 뭉클하고 고맙고 감사하다. 남은 인생을 빚졌다. 내란은 아직 진압하지 못했다. 여전히 내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미래세대는 동지가를, 21세기 아침이슬이 된 다만세 는 꼰대세대가 아스팔트 위에서 밤새워 따라 부르는 현장학습을 했다. 남태령은 생생한 민주주의 학교였다. 내 맘속의 국가인 〈 님을 위한 행진곡 〉을 떼창했다. 악은 효율적이지만 단순하고 선은 어렵지만 다채롭다 . 적어도 우리는 위기 때 악의 평범함보다 선의 평범함이 우선 발현되는 협동적 공동체가 다수임을 확인했다. 서울로 향하는 전봉준투쟁단(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으로 구성) 트랙터가 남태령에서 가로막혔다. 굥서결을 체포하기는커녕 경찰이 내란부역자 짓거리 를 작심 하고 저질렀다. 공권력이 내란수괴는 감싸고 시민들을 적대시하였다. 따순 집구석에 틀어박혀 전농TV 라이브만 지켜보는 게 부끄럽고 송구해서 전농에 새털만큼 보탰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안타까워질 줄 몰랐다. 내란수괴 굥서결은 사형 선고 후 빵에서 평생을 매주 120시간 씩 거울 보며 가위바위보를 시켜 이길 때만 휴식 시간을 줬으면 한다. 수인번호는 특별히 王-1818로 하고. 차빼라! 힘내라! 농민이 최고, 농사가 최고! 나갈 때도 됐는데, 굥서결 방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동짓밤 모진 한파를 뚫고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쉰 목소리로 질서 있는 퇴진을 사방에 고했다. 동지가 지났다. 밤은 점점 짧아진다. 세상 이치다. 2024년 동지, 시민들이 남태령으로 모였다. 동지가 되었다.

2찍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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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찍은 변할 기미가 눈곱만큼도 없다는 걸 확인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2찍은 반성이 일절 없음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조까라며 이런 모임엔 불참할 것과 2찍이랑 말과 시선을 섞기 싫다고 선언했습니다. 돌아서자마자 소심하게 전화번호를 차단했습니다. 2찍은 변하지 않고 다음에도 2찍할 거라는 걸 거듭 확인했습니다. 지극히 소심한 개인적 팽형을 선고한 처단입니다. 개인적으로 2찍과 2찍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관계를 단절하기로 했습니다. 평소에도 거북했는데 소고기를 사준다고 해도 더는 눈길조차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개인적 결심이자 의지임을 밝힙니다. 널리 알렸습니다. 2찍에게 참회와 바람직한 변화를 바라는 기대도 접었습니다. 행여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3대까지 2찍했다고 내색하지 못하도록 경멸과 멸시의 시선을 보낼 겁니다. 다름과 틀림은 구분해야 합니다. 사상의 자유는 다름이지만, 박정희를 따라하고 굥서결을 지지하는 건 명백한 틀림입니다. 나찌를 대하는 독일처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대가리에서만 추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란공감범입니다. 멸시와 함께 사회적 팽형을 당해야 합니다. 울화통이 터지고 열불내기도 지쳤습니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마다 참사가 일어난다는 기적의 논리를 펴는 니들은 영원히 당하라 며 미들핑거를 날립니다. 욕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 찍어 주는 2찍에게 고하는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생각이자 사소한 복수입니다. 덧. 20241226 가장 사회적 언어로 문자 를 돌렸다. 2찍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개인적 팽형으로 처단하는 아주 소심한 행위다. 잊지 않으려고 기록한다.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기록한다.

정여름 예찬 -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는 서사적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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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는 정여름 노동의 미래는 노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블루스카이 에는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는 묘생 10년차 정여름 이 있습니다. 집사가 올리는 사진을 보면 정여름의 일상은 언제나 쩍벌 자세로 누운 채 자고 있습니다. 몸을 비틀어 엎드린 자세라도 하면 모두가 긴장하며 무슨 변고가 났나 걱정합니다. 역동적인 너무나 역동적인 자세를 한 희귀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정여름 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합니다. 나른한 오후에는 정여름을 보며 어서 따라 하자고 선전·선동하곤 합니다. 정여름은 생존을 위해 노동하지 않습니다. 노동은 집사 가 합니다. 정여름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노동의 미래는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꿈꾸는 일을 하는 거니까요. 정여름은 노동의 미래입니다. 인디언은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노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생산력이 낮은 게 아닙니다. 효율이 높은 도구가 있어도 더 많이 생산하기보다 더 적게 노동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1 토착 인디언은 유로아메리카인들에게 거의 절멸되었지만 인디언의 삶은 모든 노동의 종착지였습니다. 정여름은 노동의 종착지를 넘어 노동의 미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정여름의 일상은 서사적입니다. 노동 착취에 직면한 인간 삶의 나약함에 맞서 노동의 미래를 매일매일 실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오마주하려고 애씁니다. 인간은 긴 인생 중 십여 년 가량 정여름을 따라 하지만 인간이 오마주하는 시간은 정여름의 평생입니다. 2 정여름의 하루하루는 반려동물이 보여주는 반려인간을 위한 팡세입니다. 정여름은 선구자입니다. 멍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시간 3 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상상력이 생깁니다. 자본은 변신을 거듭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앗아갔습니다. 정여름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초연 합니다. 정여름은 인간이 꿈도 꾸지 못하는 노동의 미래를 한결같이 실천하는 선구자입니다. 세상이 흉흉하지만 정여름 덕분에...

내란 12일간의 지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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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3(화) 22:15 굥서결 , 비상계엄 self-coup 선포( 내란 발발 ) 20241204(수) 불법 계엄을 처음 보신 분들에게 실시간으로 현직 대통령 체포, 구속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늘 점심과 저녁을 먹었는데 2찍은 안 바뀝니다. 홍준표처럼 해프닝 취급합니다. 꼭대기부터 창문을 깬 끄트머리까지 광장에서 특별재판부가 공개재판해야 합니다. 이렇게 적어도 세 번을 해야 그나마 꼬랑지를 내리며 2찍한 걸 내색하지 않을 겁니다. 용서와 화해를 내세우며 유야무야하면 이런 사태는 재발합니다. 이에 촉구합니다. 대통령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구속하시라. 특별재판부를 특별법으로 조속히 구성하시라. 불법 계엄 가담 공무원을 체포 후 특별재판부에서 처단하시라. 20241205(목) 프랑스는 1944년부터 10년간 약 35만명 부역 혐의자 중 약 12만명 재판 회부, 9만 8000여명 유죄 선고. 이 중 3만 8000여명 징역 또는 금고형. 사형선고를 받은 6700여명 중 1500명을 처형. 불법 계엄 가담자들 꼭대기부터 끄트머리까지 단두대로 !!! 이런 절차 도 꼭 필요합니다. 깡패 대신 기자가 맨 앞에 서야 합니다. 계엄포고령 을 자기 이름으로 냈는데 누가 썼는지 도 모르는 똥별이 있습니다. 아무튼 군형법 제5조에 따라 반란 수괴는 총살입니다. 어설픈 쿠데타가 아니라 여의도로 달려간 시민과 총부리를 잡으며 막은 안귀령 선생 같은 분들 덕분이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현행범은 얼른 체포해서 구속해야 합니다. 20241206(금) 아직 누구도 체포하지 않았으므로 내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우두머리부터 끄트머리까지 빨리 체포하시라!!! 장군들 "항명이 옳았다" 잇단 양심선언 ...이 아니라 탈출 버튼을 누르는 거죠. 현행범으로 긴급체포하지 않으면 그놈도 공범입니다. 한강 작가 얘기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방첩사 ← 기무사 ← 보안사, 자연사로 최대 혜택을 본 전두환이...

당신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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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인간의 일이고 투쟁은 신들의 일이다 시민은 권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서 민주공화국은 시민 투쟁에 대한 각주다 띨빵 하고 너무나 무도한 권력을 박살내는 망설임 없는 걸음걸음은 과거를 향한 예배 민주공화국의 원점을 찾아서 총칼에 맞서 거침없이 탄핵봉을 든 당신이 희망입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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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죄를 죄다 찰스 다윈 Charles Darwin 의 '적자생존 Survival of the fittest '에 뒤집어씌웠다. '적자생존'은 원래 다윈이 고안한 표현도 아니다. 다윈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 의 작품인데 앨프리드 월리스 Alfred Wallace 의 종용으로 다윈은 《종의 기원》 제5판을 출간하며 당신 이론의 토대인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 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다윈의 죄는 거기까지다. 《종의 기원》은 물론,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그는 생존투쟁(struggle for existence)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 the fittest 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를 들어 풍성하게 설명했다. 그의 후예들이 오히려 그를 좁고 단순한 틀 안에 가둔 것이다. 이 책은 그 틀을 속 시원히 걷어낸 반가운 책이다. (4) 협력은 우리 종의 생존에 핵심이다. 우리의 진화적 적응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적자'라는 개념이 '신체적 적자'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 논리를 야생에 대입하면, 덩치가 클수록 더 싸우려 들며 그럴수록 덤비려는 자가 적고 따라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므로 최상의 먹이를 독차지할 수 있고 가장 매력 있는 짝을 얻을 것이며 가장 많은 후손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150년 동안 이 잘못된 '적자'의 해석이 사회운동, 기업의 구조조정, 자유시장에 대한 맹신의 바탕이 되어왔으며, 정부 무용론의 근거로, 타 인구 집단을 열등하다고 평가하는 근거로, 또 그런 평가가 야기하는 결과의 참혹함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되어왔다. 하지만 다윈과...

한강 작가 얘기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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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2024 was awarded to Han Kang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2024년 노벨 문학상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한강에게 수여되었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한강 작가 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앤더스 올슨(Anders Olsson)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은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증언 문학(witness literature)으로 이뤄져 있다"며 "그럼에도 한강 작가는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강은 매우 시적이고 주관적 목소리를 가진 작가"이며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고 극찬했습니다. 12월엔 한강 작가 얘기만 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만, 띨빵 1 한 개차반이 일으킨 123내란반란사태 때문에 어그러졌습니다. 한강 작가는 12월 6일(현지시각) 노벨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 에서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했습니다. 《 소년이 온다 》를 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러 가서 계엄 얘기를 하는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한강 작가는 12월 7일(현지시각) 스웨덴 한림원에서 진행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을 통해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

시인의 말 - 이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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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량한 단어를 오래 모으면 울창해질 거란 믿음이 시작한 일 손끝에서 이파리가 쏟아지는 꿈을 꿉니다 빛 같은 잎들이 읽히고 빚 같은 과오들 떨어져 나가는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이훤/문학의전당 20160823 138쪽 9,000원 자물쇠 같던 낱말들 누가 부러뜨려 놓고 갔습니까 1 한 사람을 헤아리는 일만큼 치열한 일이 있을까 2 희망은 갑자기 온다 3 일 년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습니까 4 네가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문장이 되고 싶다 5 그대도 오늘 누군가에게 위로였다 6 너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어 화분을 들였다 아침마다 바람이 답장을 두고 갔다 7 분주하지 않은 채점표를 들고 신(神)은 아직 관조합니다 8 나는 오래 멈춰 있었다 한 시절의 미완성이 나를 완성시킨다 9 나는 그대가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답장이 되고 싶습니다. 알리바이 역자 온다 특별한 날이라며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욕심 그대도 오늘 편지 어느 계급주의 사회의 화창한 하루 철저히 계획된 내일이 되면 어제를 비로소 이해하고

진보와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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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상 진보란 본래 지금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이미 성취된 것은 진보라고 하지 않으며, 오로지 미래에(내일 아침이라면 제일 좋겠다) 성취되어야 할 어떤 것만이 진보가 된다. 앞의 세대가 이루어 놓은 일을 진보라고 인정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토록 힘들게 싸워 이루어 놓은 것들이라는 게 조금만 지나면 원래부터 당연히 그랬어야 할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수전 니먼(234) '좌파'란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안녕을 보장받고 스스로의 삶을 피워낼 수 있도록 다종다기한 활동을 벌이는 집단을 뜻한다. 그중에는 자본과 국가 권력에 맞서는 투쟁과 싸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피폐해진 사람들의 물질적·정신적 삶을 보호하고 복구하기 위한, 즉 삶을 다시 구축하기 위한 여러 활동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우리 모두 모래알같이 파편화된 개인을 넘어 함께 살아가며 사회를 이루는 이웃이요, 형제자매였음을 회복하면서 사회 전체를 재구성해나가는 활동까지도 포함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단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투쟁과 요구만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회가 건설되는 데에 필요한 여러 정치적·도덕적·미학적·문화적 요구로 전선을 계속적으로 확대해나가는 집단을 뜻한다. - 홍기빈(284)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Left Is Not Woke, 2023 /수전 니먼 Susan Neiman /홍기빈 역/생각의힘 20240425 296쪽 19,000원 워크 Woke 는 1938년 "깨어 있으라 stay woke "는 노래 구절에 등장한 것이 그 기원이다. 블루스 가수인 레드벨리 Leadbelly 가 1938년에 발표한 노래 〈스코츠보로 소년들 Scottsboro Boys 〉은 "억울하게 강간죄를 뒤집어쓰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오랜 국제적 항의로 누명을 벗게 된 아홉 명의 흑인 소년에게 헌정된 노래(15)"였다. 이후 "불의에 맞서 깨어 있고 차별의 여러 증후를 언제나 감시할 것을 뜻했다(6)...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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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목표는 권력을 남성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권력에서 폭력을 제거하고 권력의 의미를 바꾸는 데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 페미니스트는 답이 없는 두 선택지에서 억지로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지를 늘리거나 질문 자체를 바꾸는 사람이다. (5) 모든 운동과 이념이 특권을 성찰하지 않는 순간 억압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22) 수치심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게 해주고, 정의감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해준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내기 어렵다. (34) 왜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생기는 걸 두려워할까. 우리 사회에서 '피해의식'은 '남 탓을 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건 과대망상이나 남 탓하기라는 문제 행동을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이다. 이런 덧씌우기는 피해자가 '건강한' 피해의식을 가지는 걸 방해한다. 피해의식 victim mentality 의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첫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 원인이 아니다. 둘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을 막을 의무가 없다. 셋째, 피해자는 권리를 침해받은 자로서 공감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피해의식을 이해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없어져야 할 것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다. (61) 페미니즘보다 휴머니즘을 지향한다거나, 여성 인권이 아니라 보다 전체적인 인권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식의 말들이 휴머니즘과 인권을 가장 탈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과 휴머니즘이 다르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가령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을 재발명하고 있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꾸자는 급진적이고도 근본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운동이야말로 인간의 조건과 개념 자체를 질문하고 재구성하는 가장 혁명적인 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