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 우리가 유일하게 완전경쟁 시장의 모델을 볼 수 있는 것은 '치킨시장'뿐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치킨시장에서도 강자와 약자가 나뉘고 프랜차이즈별로 양극화 현상도 뚜렷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자면 치킨시장 자체는 포화 상태에 가까운 완전경쟁 시장이다. 우리가 꿈꾸는 건전한 자본주의 시장의 증거가 겨우 치킨점이라니 적잖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완전경쟁 시장이라 부를 수 있어도 치킨업계 입장에서는 과잉 시장이고 피 터지는 '치킨게임'의 현장이다. (56)
  • '대체 치킨은 무슨 맛으로 먹는가'였다. 그런데 오래도록 관찰한 결과, 사람들은 치킨을 닭과 연결짓지 않는다. 치킨 자체가 닭이긴 하지만 우리가 치킨이라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닭이 아니다. 각자 갖고 있는 치킨의 취향은 후라이드냐 양념이냐로 갈리지만 그건 튀김옷이나 소스에 대한 취향에 가깝다. (58)
  • 라면과 믹스커피 그리고 치킨이야말로 한국의 지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음식일 것이다. 그 음식이 닿아 있는 사회의 접촉면이 워낙 다양하고 그 자체로 근대의 음식 형성과 미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74)
  • 그동안 음식칼럼니스트들부터 맛집블로거들, 그리고 대중들까지 치킨에 대한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해놓았다. 당연한 일이다. 파는 사 람도 많고 먹는 사람도 많으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제적 음식'이기 때문이다. 또 각자의 후라이드가 있고 각자의 양념치킨을 가졌다는 점에서 '모든 이'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후라이드치킨의 역사야말로 각자의 경험 속에서 녹아나는 '생활'의 성격을 갖는다. 누구나 첫 치킨을 먹은 경험, 치킨과 얽힌 기억들을 갖고 있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떠들 수 있기 때문이다. (75)
  • 만인이 각자의 치킨 역사를 갖고 있다. (75)
  • 더보기...

대한민국 치킨전/정은정/따비 20140710 288쪽 14,000원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도축하는 닭은 약 8억 마리로 추정되고, 그중 절반 이상을 치킨으로 튀겨 먹는다. 치킨이 닭이지만 우리가 부르는 치킨은 더 이상 닭이 아니다. 끓이거나 볶는 것을 닭이라 부른다면 튀기거나 구웠을 때 닭은 비로소 치킨이 된다. 우리는 각자의 후라이드가 있고 각자의 양념치킨을 가졌기에 한국 후라이드치킨에는 만인의 역사가 있다.

각자 가진 치킨의 취향은 후라이드냐 양념이냐가 아니라 튀김옷이나 소스에 대한 취향에 가깝다. 치킨의 승부처는 튀김 기술이 아니라 '소스와 염지'다. 우리는 닭살이 아니라 짭짤하고 부드러운 치킨 맛과 양념소스 맛에 반응한다. 맥주가 술맛이 없어 홀로 독립하지 못하고 치킨과 함께 먹기 시작해서 치맥이 생겼다.

라면과 믹스커피 그리고 치킨이 한국의 지금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가 가격 인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쌀이 아니라 라면과 치킨이 됐다. 식용유 시대에 태어나서 자란 세대는 기름기에 중독이 됐다. 1984년 생긴 KFC 덕분에 여자들은 가부장과 남자형제에게 빼앗겼던 닭다리를 비로소 만끽하는 해방의 기회를 만들었다.

치킨 시장은 포화 상태에 가까운 완전경쟁 하는 치킨게임 시장이다. 치킨집이나 차리자고 할 만큼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또 아무나 할 수도 없는 것이 치킨집이다. 그래서 완전경쟁의 벌판에 놓인 치킨과 독점의 온실에서 생산된 맥주가 만난 치맥은 시장의 꼭대기와 바닥이 만난 묘한 조합이다. 그 이면에는 자본의 힘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육계회사와 맥주회사가 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1인1치킨하는 치느님 시대지만, 대한민국 치킨 시장은 착취 반 눈물 반을 갈아 넣어 튀기는 치킨게임 시장이다.


덧. 오탈자
63쪽 12행 후라이드치킨로 → 후라이드치킨으로
94쪽 10행 '치느님'이 되는 것이다 → '치느님'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