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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과 차별금지법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현장에 참여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무지개행동

1.
대한민국임시헌장(1919. 4. 11)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의 귀천(貴賤) 및 빈부의 계급(階級)이 없고, 일체 평등함(大韓民國의 人民은 男女貴賤及 貧富의 階級이 無하고 一切 平等임)

2.
한국사회에서는 '차별을 알아차리기' 위한 법으로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차별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토론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이 차별인지, 금지되어야 할 차별행위는 어떤 것인지, 차별을 없애가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등은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차별금지법은 이와 같은 질문에 사회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길을 여는 법입니다. (...) 권리는 파이가 아닙니다. 누군가 권리를 누리게 된다고 내가 뭔가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학생이 교육받을 권리를 누린다고 해서 비장애학생의 교육권이 침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헌법이 명시한 교육권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기본적 인권으로 확립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인권을 인권이게 하는 과정이지요. 누군가 겪는 차별이 정당화될 때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차별도 정당화됩니다. 그것은 언제든 우리 자신을 향할 수 있습니다.1

3.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란'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어떤 차별을 금지해야 할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이 성소수자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이주민, 무슬림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인종, 민족, 피부색, 출신 국가, 종교 등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므로 그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2


이주민을 향해 "한국인이 다 되었네요", 장애인을 향해 "희망을 가지세요"라는 말도 차별인 줄 몰랐습니다. 이주민은 한국에 오래 살아도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렸고, 장애인은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차별이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건 결과적으로 모든 차별을 두둔하고 나서는 꼴입니다. 차별금지법 반대의 역설은 어떤 차별을 금지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무엇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그것이 그대로 차별이 분명하므로 그 차별을 금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혐오와 차별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차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뒤로 미루지 말고 차별금지법을 빨리 만들어 선량한 차별이 무엇인지 공부해야 합니다. 다시 만난 세계는 혐오와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대만에서 결혼한 한국 여성과 대만 여성이 한국으로 이민을 와도 부부로 인정받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장애인이 편하게 대중교통을 타면 좋겠습니다.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에서 더는 얼어 죽지 않아야 합니다.


  1. 차별금지법 10문 10답
  2.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 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