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신극우주의의 양상

신극우주의의 양상
  • 자본의 집적1 경향은, 자신이 전적으로 부르주아라는 계급적 자의식을 지니고 있고 또 자신의 계급적 특권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가급적 강화하려 하는 여러 계층들이 영구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이 계층 집단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혹은 자신들이 사회주의라 부르는 대상을 증오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늘 잠재해 있는 계급 하락의 책임을 그 원인이 되는 장치에 묻는 대신, 자신들이 한때 지위를 누렸던 체제를―전통적인 관념에 따르자면―비판적으로 적대해왔던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
  •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은 자주 그렇듯이 객관적인 상황에 의해서 더 이상 그 실체를 유지하지 못할 때 비로소 자신의 악마적인 성격을, 자신의 진정으로 파괴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지요. 마녀재판이 실제로 벌어졌던 때는 토마스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가 아니라, 반종교 개혁의 시대에 와서였습니다. (13)
  • [극우주의에] 가장 영향 받기 쉬운 집단이 특정한 소시민 계급 집단이기는 합니다. 무엇보다도 백화점 등 유사 상업시설이 소매업을 독점함에 따라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소상공인들이 특히 그렇지요. 하지만 소시민 외에도, 아시다시피 언제나 위기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농부들도 분명 두드러진 역할을 합니다. 제 생각에는 농업 문제를 근본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보조금 지급 등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인위적인 방식이 아닌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즉 이성적이고 합당하게 농업을 집산화하는 데 정말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 불길의 진원지는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입니다. (15)
  • 파시즘 운동이 경제와 맺는 관계는 구조화되어 있으며, 이 관계는 바로 저 자본의 집적 경향 속에, 또 빈곤을 양산하는 경향 속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18)
  • 저는 공포의 예견이란 말이 지금 극우주의에 관한 통상적인 견해에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대단히 핵심적인 무언가를 건드린다고 생각합니다. (...) 그것은 바로 이 운동이 어떤 면에서는 파국을 원한다는 것, 세계 몰락의 판타지를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19)
  • 우리는 이런 운동들을 정신적 수준이 낮고 이론이 없다는 이유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그 운동이 실패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정치적 통찰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운동의 수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 즉 일차적으로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프로파간다 수단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구사한다는 점이 이런 운동들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22)
  • 청중 여러분, 저는 극우주의가 심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아니라 극히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임을 잘 알고 있다고 거듭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극우주의는 그것의 고유한 실체가 사실과 다른 거짓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인, 이 경우에는 프로파간다적인 수단들을 동원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극우주의가 순전히 정치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정치적인 투쟁을 벌이는 경우를 제외하면, 극우주의를 그 자신의 가장 본래적인 영역 속에서 마주해야 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에 거짓말을 맞세우거나, 극우주의와 똑같이 머리를 굴리려고 시도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정말로 이성의 단호한 돌파력으로, 정말로 비이데올로기적인 진실로써 극우주의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53)
  • 극우주의를 처음부터 마치 자연재해처럼 바라보는, 마치 돌풍이나 기상재해인 양 예보를 하는 이런 사고방식에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을 차단해버리는 일종의 체념이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현실과 맺는 나쁜 구경꾼 같은 관계가 들어 있습니다. 극우주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계속될지에 대한 책임은 종국적으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54)
  • 더보기...

신극우주의의 양상Aspekte des neuen Rechtsradikalismus, 2019/테오도어 W.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이경진 역/폴커 바이스Volker Weiß 해제/문학과지성사 20200715 90쪽 11,000원

왜 세계대전이 끝나고 22년이 지났는데 서독에서 극우주의가 나타났는가? 비판이론 철학자 아도르노가 1967년 4월 4일 빈 대학에서 한 강연입니다. 이 강연의 녹취록을 풀어 독일에서 2019년 7월에 출간했습니다. 이때는 극우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이 2017년 총선에서 12.6퍼센트 득표율로 원내 3당이 되며 연방의회에 진입했습니다. 출판사는 "미래를 향해 띄워 보낸 병 편지"라고 홍보했습니다. 그럼에도 2025년 2월 23일에 끝난 총선에선 AfD는 20.4% 득표율로 152석을 얻어 원내 2당으로 약진했습니다.

아도르노는 극우주의가 무엇인지 딱 잘라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파시즘을 뜻합니다. 독일에서는 대체로 나치즘을 추종하는 세력―반유대주의, 인종주의, 극단적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 배타적 애국주의―을 극우로 분류합니다. 극우파의 득세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상(異常)한 극우주의자가 대통령이 됐고, 한국은 파면이 임박한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이종(異種) 극우 정당으로 변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가 미래를 향해 띄워 보낸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극우 정당이 원내 2당이 됐습니다. 탄핵 반대 집회에 나타난 극우 세력은 차별과 혐오에 바탕을 둔 무리로 보입니다.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고민이 큽니다. 울화통이 터지는 지금 심정으로는 코로나 대하듯 격리와 박멸을 꾸준히 했으면 싶습니다.


  1.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 축적이 심화되면서 부의 생산 수단 및 조건들이 특정한 개별 자본 아래로 집적되는 현상을 말한다. (10)